
고대 바로크는 말 그대로 ‘고대 시대에 있었던 바로크 경향’을 뜻한다. 바로크는 좁게는 17세기 유럽의 예술 사조를 일컫는 말이지만 확장하면 비정형 경향을 통칭하는 일반명사이기도 하다. 후자의 정의를 적용하면 고대 바로크는 ‘고대의 비정형 건축’이 된다.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로마에 이르는 건축 가운데 비정형 특징이 두드러진 경향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마케도니아 건축은 고대 바로크의 시작을 이루지만 기간이 짧아서 대상이 많지는 않고 로마시대 건축이 주요 대상이다.
고대 바로크 = 고대의 비정형 건축 
로마 건축은 전체적으로 강한 비정형 특징을 보인다. 그리스 건축이 정밀한 비례와 규칙적인 부재조합을 통해 반듯하고 전형적인 특징을 나타내며 이를 바탕으로 서양건축의 원형을 창출했기 때문에 이런 특징을 통틀어 정형주의로 부를 수 있다. 로마 건축은 이와 반대로 다양성을 대표적 특징으로 갖는다. 워낙 방대한 제국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오더 같은 규범으로 제국 내 건축을 통일시키는 것은 불가능했다. 지역과 시기, 건축가와 권력자의 예술관과 취향 등 개별 조건에 따라 다양한 건축을 구사했다. 쾌락과 놀이를 즐겼던 국민성도 다양한 건축물을 만들어낸 또 다른 주요 배경이었다. 다양성에는 비정형이 수반되기 때문에 이런 특징들을 합하면 로마 건축은 대체적으로 비정형 경향을 주요 특징으로 갖는다고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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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쿨라네움(Herculaneum)에서 발견된 벽화 그림 - 나폴리 근교. 서기 63-79년. 조각 페디멘트를 보여주는데 이 기법은 실제로 17세기 바로크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어휘가 되었다. |
스케일을 좁히면 로마 건축 내에서 다시 ‘정형 대 비정형’의 대별 경향을 찾아낼 수 있다. 정형주의는 정형성을 요구하는 상황, 혹은 정형성으로 귀결되기 쉬운 상황에 따른 건축물에 해당된다. 기원전 2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수입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 그리스 고전주의 원형, 구조기술에 충실한 실용건물, 불특정 다수의 시민을 위한 공공건축 등이 대표적 예이다. 모두 규범이 개인의 취향보다 우선권을 가질 수 있는 상황들이다. 비정형주의는 이와 반대로 생각하면 된다. 개인의 장식욕구가 반영된 장식주의, 제국 내 속주에 속하는 지역주의, 황제의 개인취향이 반영된 건축 등이 대표적인 예이며 아주 넓게 보면 그리스의 정형주의에 대비되는 로마 건축만의 특징도 여기에 속한다. 이런 비정형 경향을 통칭해서 고대 바로크라고 부른다. 구체적 건축기법으로는 장경주의, 장식과 오더, 자우형태와 자유구성, 연속 공간, 유기구성, 조각 페디멘트, 돌출 오더와 쌍기둥, 북아프리카 지역양식 등을 들 수 있다.
장경주의 – 연극무대처럼 극화된 극장형 신전
장경주의는 말 그대로 건축을 연극 무대처럼 꾸미는 경향으로 주로 로마 신전에 나타난 건축기법이다. 신전을 무대 위에 올려놓고 감상하는 대상으로 정의한다. 이것이 바로크인 근거는 ‘극화’에 있다. 무대 위 감상 대상이 되기 위해서는 평범하거나 정적이어서는 안 되고 눈길을 끌 수 있게 극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건물 종류 가운데 신전을 장경주의에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신전이 이런 방향에 잘 맞기 때문이다. 열주와 페디멘트 등 건축 요소로 봐도 그렇고 사람들이 모여서 제를 올리는 기능의 측면에서도 그렇다. 당시의 종교의식은 경건한 신앙 행위라기보다는 즐거운 축제에 가까웠고 흥을 돋우기 위해 신전을 하나의 무대처럼 꾸민 것이다.
이를 위해 신전에 시각적 집중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기법을 동원했다. 높은 기단 위에 올린 뒤 정면을 강조해서 2차원 면처럼 느끼게 했다. 열주는 정면에만 한정되었으며 나머지 세 면은 벽 구조가 중심이 되고 그 위에 오더를 반원 벽기둥으로 덧붙였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포룸 같은 시내에 세워져 초점 역할을 하면서 인공성이 크게 늘어났다. 독립 영역을 갖는 등 주변에서 분리되어 독립 오브제로 존재했다. 오더의 비례가 가늘어지고 장식이 증가함으로써 오더의 생명을 잃고 장식부재가 되었다. 이상을 종합하면 로마 신전은 도시 속 볼거리로서 소품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장경주의를 구성하는 중심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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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피터 카피톨리누스 신전(Temple of Jupiter Capitolinus) - J. 카를뤼(J. Carlu)의 1924년 그림이다. 로마 신전은 이미 초창기부터 그리스 신전과 달리 무대 장면을 보는 것처럼 계획되었다. |
공화정 기 로마 신전의 장경주의를 보여주는 좋은 예로 극장 형 신전이라는 유형을 들 수 있다. 말 그대로 신전을 극장과 접목시켜 무대를 감상하는 것 같은 요소로 처리한다는 개념이다. 주피터 카피톨리누스 신전은 이것의 시작을 알리는 예이다. 이 신전은 승전 장군이 네 필의 백마가 끄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도착하여 승리를 축하하는 종교 의식을 치르던 곳이었다. 승전 종교 의식에서는 장군을 필두로 행정 장관과 원로, 전리품, 약탈품, 제물, 참전군인, 포로, 승전을 찬양하는 그림 등이 순서대로 행렬을 벌이며 신전 앞에 운집했다. 신전을 배경으로 종교 의식이 벌어졌는데, 종교 의식은 연극 공연, 합창, 안무 등이 어우러진 축제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런 제식의 배경이 되는 신전은 극장의 무대, 말 그대로 하나의 장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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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층 쌓기
로마인들은 장식 자체를 즐기지는 않았다. 오더 사용은 좀 예외적이었다. 그리스 오더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리스 때보다 더 장식적으로 활용했다. 코린트식 오더를 즐겨 사용한 점과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해 더 장식적인 콤포지트 오더를 발명한 것은 좋은 예이다.
콤포지트 오더가 처음 등장한 것은 기원전 1세기 중반 경 폼페이와 티볼리에서였다. 두 도시 모두 휴양도시였기 때문에 유흥풍의 건축이 요구되었고 이를 만족시키기 위해 장식다움이 강한 새로운 오더 양식을 만든 것이었다. 콤포지트 오더는 처음부터 장식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주두 문양을 다양하게 변형시켜 사용했다. 아칸터스 잎 자체가 다양해졌을 뿐 아니라 소용돌이 문양도 여러 개 겹쳐 쓰는 등 변화가 심했다. 이후 개선 아치, 신전, 후기 제정기의 목욕탕과 바실리카 등 장식 목적이 강한 건물에 많이 사용되었다.
오더의 장식화는 단일 오더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어서, 여러 개의 오더를 위아래로 중첩시키는 ‘오더 층 쌓기’라는 기법도 등장했다. 1층을 도리스식 오더, 2층을 이오니아식 오더, 3층을 코린트식 오더로 각각 쌓은 것이 표준 구성이었다. 이는 단순히 장식 목적만은 아니어서 아래 쪽 오더는 튼튼하고 남성적인 양식으로 받치고 위로 갈수록 가늘고 여성적인 오더를 사용한 점에서 역학의 원리도 충실히 좇은 구성이었다.
오더 층 쌓기는 3층을 기본 구조로 갖기 때문에 복층 건물에 사용하게 되는데 원형극장의 외벽이 대표적인 예이다. 로마 시내의 예를 보면, 마르첼루스의 극장에서 2층으로 사용한 뒤 콜로세움에서 표준구성이 완성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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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를 이용한 층 쌓기. 1층부터 ‘도리스식-오이나식-코린트식’의 순서로 쌓는 오더 층 쌓기는 로마건축의 구조실용주의와 장식주의를 동시에 보여주는 기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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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장식주의의 절정 - 개선 아치 
로마 장식주의의 절정은 개선 아치였다. 개선문이라고 부르는 건물로 황제나 장군이 승전을 기념하거나 정치적 행사 등을 위해 행렬을 할 때 통과하는 기념비적 대문이기 때문에 화려한 장식이 필수적이었다. 찬양의 대상이 되는 권력자의 치적을 기리거나 로마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식이 많이 들어갈 수 있는 바탕 면이 넓을수록 좋았고 아치의 벽체구조가 여기에 제격이었다. 아치 자체의 개념도 바뀌었다. 아치는 검소하게 쌓으면 실용적인 토목 구조가 되지만 홍예돌, 종석, 홍예굽 등을 장식적으로 처리하면 화려하게 변할 잠재력이 큰 양면성이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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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투스의 아치(왼쪽)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오른쪽) <출처 : wikipedia>
개선 아치에서는 이런 장식적 가능성을 최대한 살려서 홍예돌을 여러 겹의 동심원이 겹쳐지는 아키볼트로 처리했고 종석과 홍예굽 역시 장식적으로 처리했다. 여기에 코린트식이나 콤포지트 오더를 벽기둥으로 더해서 장식 효과를 높였다. 그리스 건축에서 우주의 비밀을 비례법칙으로 구현해낸 정신적 건축 요소였던 오더가 아치에 종속되는 장식 어휘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이런 점에서 개선아치는 로마다움을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건축적 예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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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탄틴의 개선 아치(Arch of Constantine) - 로마. 서기 315년. 개선아치는 건축물이기보다는 조각장식을 새기는 캔버스에 가깝다.
절정은 아치 주변의 벽면이었다. 역사적 사건과 승전 등을 찬양하는 돋을새김 장식이 벽면을 가득 뒤덮었다. 개선아치는 찬양의 대상이 되는 황제의 이름이 붙게 되는데 포룸 로마눔에 세워진 티투스의 아치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아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개선아치의 장식주의는 콘스탄티누스의 아치에서 절정에 이른다. 콘스탄티누스가 막센티우스와의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해서 세운 것인데 정치적 야심이 큰 황제였던 만큼 자신의 정치적 권위 뿐 아니라 기울어가는 로마 제국의 권위도 자랑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로마는 너무 많이 기울어가고 있었고 새로운 돋을새김을 축조할 경제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선대 황제들의 건물에서 장식물을 떼어다 벽면을 가득 채울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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